빛나는 선조

Title신빈 김씨(愼嬪金氏)에 대하여 2021-07-22 23:20
Writer Level 10
신빈 김씨(愼嬪金氏)는 첨지 중추부사 김원의 따님으로 1406(태종 6) 태여났습니다.

신빈김씨는 본래 궁궐의 물품을 관리하는 호조 관할 부서인 내자시(內資)의 여종() 이였으나 1418년 세종이 태종의 양위로 갑작스레 등극하자 궁인의 충원이 필요하게 되었던지 노비였던 김씨가 원경왕후에게 발탁되여 13세의 나이로 궁녀로 선발, 입궁하게 되고, 소헌왕후의 지밀나인으로 배속 됨니다. 천성이 부드럽고 총명하여 양궁()을 섬기는데 오직 근신하였다고 전하여 짐니다.

142722세의 나이로 첫아들 계양군(1427~1464)을 낳았고, 1428년 아들 의창군(1428~1460), 1430년 아들 밀성군(1430~1479), 1431년 아들 익현군(1431~1463), 1435년 다섯째 아들 영해군(1435~1477), 143934세의 나이로 여섯째 아들 담양군(1439~1450)을 낳았고, 1439(세종21) 127일 소의에서 귀인이 되었고, 1450년 귀인에서 신빈으로 책봉된 듯 함니다. 여섯 아들 외에도 두 딸을 낳았으나 모두 어려서 사망하여 출생. 사망연도가 기록되여 있지 않습니다.

소헌왕후와 신빈김씨는 사이가 매우 돈독하여 기록에 의하면 김씨가 입궁하던 해에 소헌 왕후가 셋째 아들 안평대군을 낳았는데, 왕후가 안평대군을 양육하는 사이 아우로 인해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던 막 두 살 된 수양 대군을 김씨가 돌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케 양육된 수양은 신빈을 어머니로 예우하였고 신빈의 2남 의창군이 단종 복위 운동에 가담하였어도 불문에 붙였고, 3남 밀성군이 계유정난 거사에 관여치 않았어도 후일 중용한 것은 수양대군과 신빈김씨 사이에 이러한 관계가 작용했다고 봄니다. 세종 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세종이 도승지 김돈에게 신빈김씨에 양육을 맡긴 이유에 대해서 소헌 왕후가 매사를 신빈에게 위임하고 막내 아들 (9남 영응대군)양육까지 맡겼는데, 성품이 바르고 근신하지 않았다면 중전이 이를 맡겼겠는가라고 하는 대목이 나옴니다.

조선 왕조 충의 열전에 따르면 신빈 김씨가 수양 대군을 업어 길러 수양 대군이 김씨를 대하는 것이 애틋했는데 김씨의 아들과도 사이가 좋아 훗날 단종을 밀어내고 왕위를 찬탈하고 등극이 수월 할수 있었다고도 합니다

1450년 세종이 승하하자 머리를 깍고 여승이 되었는데, 단종이 이를 환속 시키고자 하였으나 끝내 김씨의 뜻을 꺽지 못했다고 합니다. 세조가 등극하고 나서는 그녀에 대한 대우가 크게 되었고, 큰 집과 재물을 하사 하였다고 합니다. 세조 10, 146494일 향년 59세로 졸하여 세조가 쌀과 콩 70석을 부의(賻義)로 내렸다고 기록 하고 있음니다.


신빈김씨의 묘는 경기도 기념물 제 153호로 지정되였고, 묘역에는 봉분, 상석. 장명등. 문인석등이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묘갈(墓碣)이 있다. 봉분의 높이는 220 cm이고, 둘레는 25m이다. 묘 주의에는 높이 230cm의 묘비, 높이 200cm4각 장명등, 250*57*50cm의 문인석 2, 가로 100cm 세로 180cm의 상석이 있다. 묘갈의 전체 높이가 230cm 이고, 비신은 157*57*25cm으로 종 모양의 비갓이다. 문인석은 섬세하게 장식되여 여성적인 부드러운 모습을 보인다. 곡항은 높이 1.5m 50cm 로 묘 주위를 둘러 싸고 있다.


大東 金石書에 의하면 이는 성하원년(聖下元年) 에 세운 것으로 김수온(金守溫) 이 찬()하고 안혜(安惠)가 서() 했다고 전한다


참고문헌

大東 金石書.

華城郡誌.

京畿道 人物誌.

華城郡歷史民俗( 경히대 박불관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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