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선조

Title영릉과 세종대왕2023-10-29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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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英陵)과 세종대왕

* 영릉(英陵)

세종대왕(1397~1450)과 소현왕후 심씨(1396~1466)의 합장릉이다.

1446(세종28) 소현왕후가 승하하자 헌릉(태종과 원경왕후의 릉) 서쪽 산줄기(서울시 서초구 내곡동)에 쌍실 무덤인 영릉을 만들었다. 1450년 세종대왕이 승하하여 합장릉으로 조성하였다. 이로써 영릉은 조선왕릉 최초로 한 봉우리에 다른 방을 갖춘 합장 무덤 형태를 하고 있으며, 무덤 배치는 국조 오례에 따른 것으로 조선 전기 왕릉 배치의 기본이 되었다.

세조 이후 영릉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왕릉을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반대 의견이 있어 실행하지 못하다가 1469(예종 1)에 이 곳 여주로 옮겼다.

영릉은 능 뒤로 앵봉을, 앞쪽으로 북성산이 이루는데, 주위의 산들이 마치 영릉을 중심으로 꽃봉오리를 에워싼 듯 하다하여 모란반개형(牧丹半開形)의 명당 자리로 알려져 있다.

 

* 세종대왕은

조선 제 4대 왕으로 왕위에 올라 1450년 승하하니 재위 32년에 춘추가 54세였다.

세종대왕은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훌륭한 업적을 쌓아 수준 높은 민족 문화를 이룩하였다.

전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는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체계의 훈민정음을 창제(1446년 반포)하고 , 측우기, 혼천의, 해시계등 천문 과학기구를 발명하고 제작하였으며, 아악을 정립하고,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에 4군과 6진을 설치하여 국토를 확장 하였으며, 일본 대마도(쓰시마)를 정벌하여 국방을 튼튼히 하였다.

집현전을 설치, 인재를 양성하여 학문을 진흥시키고 경자자(1420), 갑인자(1434)등의 활자를 개량하여, 월인천강지곡(부처의 공덕을 칭송한 노래), 농사직설(농업기술을 모은책),삼강행실도(윤리 덕행을 찬양한 책), 의방유취(의학 백과사전)등 수많은 책을 발간하였다. 또한 농업을 장려하고 백성을 사랑하였으며, 어진 성덕(聖德)이 하늘같이 높았다.

 

 

 

 

세종대왕 연표

13974.10(양력 5.15)일 정안군 방원의 셌째 아들로 한양에서 탄생함.

1408년 충녕군에 책봉되고 심운의 딸과 혼인함.

14186.3(양력 7.15)왕세자로 책봉.

14188.10(양력9.18)조선조 4대 임금으로 등극.

1419년 이종무가 227척의 병선을 이끌고 대마도를 정벌함.

1421경자자를 완성, 인쇄법을 개량함.

1424사죄 삼복법을 정하여 죄인의 억울함을 줄임. 불교 종파를 선 종, 교종 양종 36사로 통합함.

1427향약구급방간행, 박연이 편경제작.

1429농사직설편찬.

1432신찬팔도 지리지” “삼강행실도편찬.

1433신찬경제속육전편찬, 만주 토벌 후 4군 설치, “혼천의 제작

1434자격루” “앙부일구를 제작하고, “갑인자만듦.

 

 

1436병진자제작.

1438신주 무원론발간.

1441치평오람편찬, “측우기제작.

1443훈민정음창제, 3년후 반포(1446)

1445용비어천가” 10권 만듦. “의방유취편찬.

1446훈민정음반포.

14502.17(양력 4.8) 영응대군 사저의 동쪽 별궁에서 승하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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